전할 수 없는 이야기

커뮤 로그 2023. 3. 31.

지독한 풀 내음과, 벌레 울음소리, 서늘한 밤 온기. 전부 익숙한 것임에도 유독 오늘따라 짙은 느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탓에 자신에게 오는 말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소천의 등 뒤로 떠 있는 커다란 달이 눈에 걸려 달의 아름다움에 홀린 듯 바라보고 있기만 하다, 시원한 바람을 타고 강의 물 냄새가 코끝에 스쳤다. 유독 강 주위를 맴돌던 그에게서 종종 맡을 수 있던 향이었다. 오랫동안 강 주변을 거닐며 잠시 옷에 배어버린 향. 소천이 없었더라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을 강의 물 냄새는 어느 한 사람을 연상시키는 매개가 되었기에 눈앞의 당신에게 집중을 할 수 있게 만들어 겨우 한 글자, 어떠한 문장도 되지 않는 한 음절만을 내뱉는다. “아” 하고.

 

 


 

 

자신은 빈말로라도 돌아오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었나보다. 하지만, 그래도 따위의 헛된 미련이 머릿속에 떠오르다 못해 억누르는 힘을 조금이라도 풀어버리면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이 눅눅해져 아스러질 때까지 눌린 이가 욱신거리도록 다물고만 있다. 어떻게 이리 상냥하고 무신경할 수가 있을까. 웃는 모습을 눈에 담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도, 거짓 한마디가 그리도 어려워 돌아오겠다는 말 하나 없다. 모순된 이야기지. 그럼에도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 해준 이에게 누가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잠시 시선을 떨구면 손목에 걸린 팔찌는 달빛에 비추어진 탓인지 시리도록 밝아 눈이 시큰거렸다. 그림자를 뚫고 닿을 정도의 밝은 달빛이었나보다. —눈이 부셔. 애써 시큰거리는 감각을 무시하며, 소천을 향해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게 웃어 보였다. 다른 이들처럼 자신도 그랬을 뿐이다. 비록 자신은 소천이 거짓된 웃음을 보고 싶냐는 말에는 긍정하지 못하였지만,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어떠한 이야기를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어 한참을 입술만 달싹인다. 지금껏 어떠한 마을을 오갔나요. 거기에는 어떠한 이들이 있던가요. 우리 마을에서는 즐거우셨나요. 다음에는 어디를 가고 싶으신가요. 우리를⋯ 기억해주실건가요?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오갔으나 소천, 본인에 관련된 질문이면 옅은 미소로 답하던 이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어디까지 말해주고, 어디까지 감출 것인지 몰라 평소처럼 시답잖은 이야기나 얹고 만다.

 

 

 

“ 정말⋯ 선생님처럼 엄청 새하얗기는 하네요. ”

“ 제가 가월마을을 떠날 일은 없을 테니, 말씀대로라면 떠나셔도 가월마을에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겠고요. ”

 

 

 

억지스러운 말. 상대가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은 자신의 못된 습관 중 하나로, 믿기지 않지만 그리 믿고 싶을 때나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일상을 지키고 싶을 때마다 그리했다. 소천의 말을 믿지 못하였고, 이 마을을 떠나 일상 중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 뭐, 분명 여기서 크게 바뀌지 않을 테니까요! ”

 

 

 

과연 좋은 이별이 있나 싶다.

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여 이별이 슬프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선생님인 당신께 묻는다면 해답을 알 수 있을까.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되어, 자신이 부모를 잊었던 것처럼 당신마저 차차 잊어버린다면. 당신이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주었는지, 어떠한 향을 묻히고 돌아왔는지, 어떠한 미소를 보여주었는지, 당신의 얼굴과 목소리, 이름마저 잊는다면. 끝내 당신이 남겨준 이 실마저 끊어진다면. 나는 누구를 그리워해야 하고, 누구를 그리워하는 걸까.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이것도 제가 무지해서 그런 걸까요?

 

자신은 소천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한 진실을 몰랐기에 능력으로 만들어진 실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조차 몰랐고, 사실을 몰랐기에 끝내 당신을 잊어버려 남은 것이 남겨준 흔적 하나뿐이 될 미래를 위하여 먼지 하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절대 닳을 수 없도록 꽁꽁 감춰놓는 바보 같은 짓이나 하고 말 것이었다. 벌써부터 그를 그리워하는 주제에 아는 것도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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