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커뮤 로그 2023. 4. 3.

누군가 말했다. 봄은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계절이라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면서 겨울을 지낸 생명들이 숨을 죽인다. 차가웠던 바람이 온기를 품기 시작하며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기 마련이니. 그리고 눈 앞의 당신은…. 떠날 준비를 마친 여행자와 같이 보인다. 때를 안다는 듯이 차례를 기다리다 아무런 흔적 없이 떠날 것만 같은 이.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띄웠기에 더욱이나 한 순간에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이. 당신은 왜 스스로를 그리 정의하는 걸까. 이 곳에 남아 당신을 기억할 사람이 있는데.



“그리고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이 남아있으니,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아주 잠시일 겁니다.”



그렇지만요, 선생님께서 떠나가고 남은 빈자리는 당신의 것이라 누구도 채우지 못할 텐데요. 그리 속삭이는 목소리는 고요하여 되레 차가워진다. 떠나려던 당신을 보며 몇 번이고 가지 말아 달라고 붙잡으며 얘기하려 했던 내용이었고, 머릿속의 당신에게 받은 수많은 거절로 인해 문장에 담긴 감정이 무뎌진 탓이었다. 익숙해졌다 한들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흉터에 딱지가 앉았을 뿐이기에 비슷한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입을 다물기를 택했다. 그러니 유일하게 말을 꺼낼 기회일 수도 있음에도 침묵하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오며 깨달은 진리는 흔들림 없이 올곧았기에 말을 한들 바뀔 것 같지 않았다. 당신의 침묵은 나 자신을 힘들게 했지만, 나의 침묵은 당신에게 있어서 다행이었을 테지.

 

손이 닿았던 뺨이, 단단히 맞잡았던 손이 한겨울에 내린 새하얀 눈에 닿은 듯 시리게 욱신거린다. 어릴 때 잡았던 당신의 손은 매우 커서 자신의 손을 다 가리고도 남았는데, 이젠 당신과 비슷해질 정도로 자라게 되었구나. 오랜만에 잡았던 손은 자신에게 있어 먼 과거이지만 당신에게는 짧은 과거를, 따스했던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부끄럼이 많았던 저는 자신이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소천과 친해지고 싶어 주위를 맴돌았던 적이 있었다. 가월마을의 다정함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며, 둘 다 혼자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다가가지 못하고 주위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자신을 향해 웃음으로 대응해주던 당신에게 마을의 다정함을 알려주기는 커녕, 어느새부터인가 배움을 받으며 뒤를 좇던 기억이 난다. 직접 가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면 어디를 가나, 하고 시선으로 좇곤 했다. 먼저 손을 잡으려다가도 결국 새하얀 옷자락을 움켜쥐고 졸졸 따라가던 그 시절처럼, 떠나간 손을 다시 잡지 못하고 바라만 본다.

 

어쩌면 지금이 너무 슬퍼서 말이 와닿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살아가며 앞으로 이별이 얼마나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평생 마음을 속여야만 한다면 고통스럽더라도 잊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 곳을 떠나는 현재를 슬퍼하고 찾아올 앞날까지 축복하는 쪽을 택하겠다. 나는 당신을 잊을까 두려워할 것이고, 두려움 덕에 당신을 더 오래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후회따윈 하지 않겠지. 하지만 당신은 웃는 얼굴로  이별을 입에 담으며 슬퍼하지 않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미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에게 슬퍼하지 않길 바란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이야기인지. 생각이 이어질수록 감정은 차곡차곡 쌓여 한계점을 넘어선다. 그러니 축제를 즐기자고 일어난 당신에게 할 말은 그에 대한 답이어야 할텐데, 억누르는데 실패한 감정이 날 것 그대로의 말들로 튀어나온다.



“싫어요.”

“다녀오시라고 말할래요.”



자신이 몸담은 마을에 보답할 것이 잔뜩이라,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쓸 수 있게 성숙하고 행복하기만 한 척하며 무거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겨우 열도 안 되었던 조그마한 머리통에서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 지, 바보같은 생각이었음에도 꽤 열심히 지켜왔더라. 누군가에겐 정말 같잖은 사유였겠지만, 그게 전부인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꾹 눌러 삼켜버린 감정을 걸쇠로 잠궈 열어보지 못하도록 노력했건만, 자신을 담는 상자는 아직 어린 시절 그대로라 커져버린 자신을 담지 못하고 결국 터져버린듯 했다. 이지러진 마음만큼, 일그러진 얼굴이 되어 당신을 본다. 눈물이라고는 어울리지 않은 얼굴에 울음이 가득하여, 눈 끝에 눈물이 걸렸다. 웃어달라고 했는데, 자신은 울고 있다. 그러니 당신이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 다행이었다.

 

만일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희망 하나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당신이 있던 자리를 보며 여기에서 선생님께서 무엇을 했는지 생각할 것이고, 유쾌한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도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다녀오세요.”

“다녀오세요, 선생님.”



당신의 모습을 담으며 어렴풋이 내뱉는 말. 나는 침묵 대신 기약 없는 기다림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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